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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피엔스 시대
언어, 믿음세계, 일상에서의 의식적인 상징의 사용, 음악, 노래, 구술능력, 사전 계획 능력은 현생인류의 주요한 특징이다. 이 특징들은 유럽에서의 후기구석기시대에 이미 모두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가 앞에서 봤듯이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는 호모 사피엔스의 변이 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양자를 매우 다른 문화적 현대성을 가진 두 개의 생물학적 종으로 나눌 이
유가 없다. 두 종의 이행기에 관한 고고학적 자료가 보여주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현대적인 인간 행동 방식이 해부학적 현생인류에게서만 나타난다는 이론은 철회되어야 한다. 오히려 플라이스토세 후기에 이르면 인류 형태와 생활 방식이 통합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더욱더 명확해진다. 어떤 생활 방식이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면, 그 인간이 처한 생활 공간과 조건이 달랐기 때문이다. 즉 생활 방식의 차이는 각기 다른 환경에 문화적으로 적응한 결과물이었다. 이를 위해 인류는 그 오랜 옛날부터 지식과 경험이라는 자산을 이용했다. 하지만 어떤 인류 종이냐에 따라 이 자산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이 자산을 동일한 방식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생존 전략과 생활 방식을 놓고 보면 현생인류가 살았던 후기구석기는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중기구석기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 역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시기는 약 4만 년 전으로 잡는다.
기후 변화의 역사로 보면 이 시대가 시작된 시기는 마지막 빙기 후반기에 해당되며 끝나는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만2500년 전이다. 현생인류는 선조들처럼 주로 수렵 채집을 하며 살았다. 이 시기는 사냥과 식물성 식량의 채집 외에도 고기잡이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던 때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은 낚싯바늘, 작살, 그물, 그물추와 같은 유물로 뒷받침된다. 하지만 1년 중 대부분 가장 중요한 생활 기반이 되었던 것은 역시 사냥이었다. 초원은 넓고 건조했으며 밤과 낮, 여름과 겨울 사이의 기온차가 매우 심했고 동물들은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이동했다. 이러한 환경 조건에서는 상황에 대한 사전 예측이 가능했다. 그 결과 사냥을 사전에 조직할 수 있었고, 후기구석기시대의 사냥 문화는 안정적인 살림 기반을 제공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인류는 사냥을 하면서도 동물 떼를 쫓아 계속 옮겨다녔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포획물을 가지고 정해진 장소로 돌아왔고 그곳을 장기간 거주지로 이용했다. 인류는 특정한 동물이 이동하는 길목에 임시 사냥 캠프를 설치했다. 훗날 이런 장소에서 고고학자는 한 종류의 동물 뼈만 발견했다. 하지만 사냥 캠프가 아닌 일상 주거지에서 발견된 뼈들은 당시 인류가 사냥할 수 있는 모든 동물을 사냥했음을 증명해준다. 즉 훨씬 풍부하고 다양한 동물 흔적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모든 생활의 중심은 사냥·도살·도축이었다. 동물은 생존에 필수적인 고기 · 지방 · 골수를 제공했고 거기에 더해 가공해 사용할 수 있는 털힘 줄·뼈·뿔도 제공했다. 요컨대 동물은 식량으로, 또 도구로, 의복으로, 나아가 집을 짓는 자재로 남김없이 이용되었다. 인류는 늦어도 후기구석기 시대 혹은 아마도 그 전 시대부터 주변 환경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식량 조달을 위해 필수 전제 조건이었다. 대형 포유류와 다른 야생동물을 집단으로 사냥하는 방식은 이전 시대와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후기구석기시대 말기(마그달레니아 문화)에 창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도구가 발명되어 사냥 기술이 혁명적으로 개선된다. 이 도구는 창을 더 멀리 더 파괴적인 관통력으로 더 정확하게 목표물을 맞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기술로 인해 사냥 성공률은 등히 높아졌고 이는 다시금 이 시기에 인구가 증가하는 데 발판 역할을 했다. 나아가 후기구석기시대가 문화적 현대성으로 발돋움하는 데에도 토대를 제공했다.
모든 생활이 사냥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의 가축화가 나타났다. 처음 길들인 동물은 개였다. 시기상으로는 후기구석기시대 말엽이다. 하지만 당시 인간이 개를 길렀던 것은 시간이 더 지난 후 다른 가축을 기르게 됐을 때 가졌던 목적과는 아주 다른 이유에서였다.
가축들의 경우 고기와 젖 그리고 털을 공급받기 위한 목적이 주였다. 이에 반해 갯과 동물은 가장 환영받는 사냥 조력자였다. 추정컨대 갯과 동물은 처음에는 인간이 사냥하고 남은 것을 주워 먹기 위해 야영지 근처에 머물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과 더욱 친밀하고 지속적인 공동생활 을 하게 되었고, 이는 서로에게 이득이 되었을 것이다.
식량을 끓이고, 굽고, 지져서 다양하게 조리하는 기술은 후기구석기시대에 처음으로 발명된 것은 아닌 듯하다. 호모 에렉투스 또는 네안데르탈인의 야영지의 불을 피운 장소에서도 이미 그런 기술이 있었음이 짐작되는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오래 보존하는 기술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훈연, 건조, 그슬리거나 얼리는 방법 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백만 년이 지나면서 인류의 식량 섭취는 고기 소비에만 집중되었다.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육체와 정신의 발달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고기가 없었다면 현재의 형태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기를 과하게 섭취하더라도 충분한 신체 활동과 육체적으로 도전에 가까운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는 한 건강에 무해하다. 더욱이 구석기시대에는 이러한 활동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기 외에도 충분한 식물성 식량을 이용했다고 추측되지만 그 흔적은 대부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인류가 먹기에 적합하고 영양분을 가진 모든 종류의 식물을 채집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견과류, 덩이줄 기채소, 덩이뿌리채소, 식물 뿌리는 탄수화물과 섬유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고 에너지와 주요 무기질을 공급한다. 베리류 열매, 사과, 곰들, 로즈힙 등과 같은 야생 열매는 초기 호모 사피엔스에게 비타민 공급원이었다. 또 씨, 꽃, 잎사귀, 쐐기풀도 채집해서 식량으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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